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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자의 힙합, 화나(Fana)첫 정규음반 FANATIC-The Ugly Goblin

레드™ 2009. 3. 3. 14:26

 

 

  

야만인의 모습에 악마의 꼬리를 달고 왼손엔 주술봉을, 오른손엔 마이크를 높이 치켜든 FANA(화나)를 추종하는광신자.

또는 화나 그 자신.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가 대중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힙합의 정의마저  명확히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렵고 난해하고 시끄러운 음악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도 내 세대와는 동떨어진 일부 매니아 층의 음악, 또는 그것은 음악도 아니다 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수를 두고 이번 화나의 첫번째 정규앨범'Fanatic-The Ugly Goblin'을 들어보기로 했다. 바로 직전까지 소녀시대의 미니앨범 'Gee'를 카오디오에 매달고 다니던

나로서는 도전이자 모험이다. 힙합은 물론 화나에 대한 사전 지식도 전혀 없는, 그래서 더

마음을 열고 받아 들일 준비가 돼있는 편안한 상태에서 첫번째 트랙부터 천천히 음미하기로 했다. 'FANATICIZE'부터 '샘, 솟다'까지 총 12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번 앨범은 전체적인 재생시간이 짧은 편이다. 꼭 그래서 때문만은 아니지만 전 트랙을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기분이다.

재미있는 영화는 그 러닝타임이아무리 길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말이다. 

딱 한바퀴를 돌고 두 바퀴째 듣기 시작하면서 이제껏 힙합은 그 놈이 그 놈 같고 노래도 다 똑같다고 생각해왔던 나의 모래성은 금새 쉽게 무너져 버렸다.

 

이 화나라는 뮤지션은 여느 힙합 뮤지션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자신이 부른 12곡 마저도 제각각 다른 느낌을 준다. 곡 하나하나가 개성이 뚜렷하고 귀에 쏙쏙들어와 박혀서 두번째, 세번째 부터는 이내 발을 구르며 흥얼거리는 나를 의식할 수 있었다. 

화나의 랩엔 운율뿐 아니라 멜로디가 있다. 그리고 바이브레이션과는 다른 잔잔하고 미세한 떨림이 목소리에 배어있어 아주 색다른 느낌을

준다. 굳이 화나의 음색을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중성적인 매력이 있다. 어릴적 마징가Z에서 남,녀 두개의 목소리를 내던 아수라백작이 떠올랐다. 물론 그처럼 이중의 음성이 따로따로 들리는게 아니라 칵테일 글라스에 두 목소리를 잘 붓고 한참을 셰이크 한 후 잔 가장자리에

레몬즙을 적시고 설탕을 뿌려 스노 스타일로 마시는 칵테일의 느낌이다. 

이 중성적이고 미세한 진동이 있는 목소리는 흡사 주문을 외는 주술사의 그것과도 닮은 느낌이다. 재킷의 캐릭터가 손에 들고 있는것을 주술봉이라 표현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이다.화나만의 독특한 음색은 한동안 반복적이다가도 변화무쌍한 운율감과 더불어 몽환적이기까지 해 음악에 몰입감을 높여준다. 힙합이 주는 이질감이나 거슬리는 느낌 없이 자연스레 동화되어가는 느낌. 그것이다.

 

 

이번 화나의 첫 정규앨범은 음악을 듣는 즐거움과 더불어 보는 즐거움도 제공하는데 앨범에 포함된 일러스트 화보집은 모두 12컷으로 영화 '터미네이터'나 '아키라' 같은 전쟁 뒤의 암울한 세계를 표현한 그래피티 느낌의 강렬한 컷들이다. 이 일러스트는 앨범의 트랙 순서와

동일한 순서로 편집돼 있어 현재 듣고 있는 음악을 빠르고 강하게 시각화 할 수도 있다. 음악을 들으며 무의식에 상상하며 떠올렸던 

이미지와 일러스트를 대조하고 비교해 보는것도 음악을 이해하고 그 차이를 느끼는 색다른 재미가 될것이다.  

전반적으로 모든 곡이 주옥같다고 말할 수 있지만 특히나 두번째 트랙'Rhymonic Storm'의 2분 10초 부터 2분 26초 까지의 그야말로 폭풍같은 속사포 랩 부분은 절대 따라 할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귓가와 뇌리에서 여전히 맴돈다. 

 

브룩클린 뒷골목의 냄새가 나는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어딘가의 제사장에 와 있는듯한 기분이 드는 음악.

힙합은 시끄럽고 난해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적극적이면서 

주위를 끌어나가는 화나만의 매력이 담겨있다.  

 

모든 사진은 프로모션사의 허락 하에 직접 촬영함.